쓰다 우메코는 일본의 여자 교육에 몸을 바쳤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불과 6세 때 일본 최초의 여자 유학생으로서 미국에 갔습니다.
저는 6살의 쓰다 우메코가 왜 유학생이 되어 바다를 건넜는지 신기하게 생각했는데요. 그것은 두 남자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우메코의 아버지 쓰다 센입니다. 지바현 사쿠라에서 태어난 센은, 쿠로후네(黒船 흑선; 미국인 페리가 주도하는 미국 해군 함대가 일본에 출몰한 것)를 본 것을 계기로 네덜란드어,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해서 1867년 막부의 통역자로서 미국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본에 돌아왔을 때 일본은 이미 메이지 시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막부가 없어지면서 직업을 잃은 센은 호텔에서 일하면서, 농업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서양 야채나 과일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토마토, 아스파라거스, 네덜란드의 딸기, 미국의 사과 등을 일본에 처음 도입한 것은 우메코의 아버지 쓰다 센이었다고 합니다). 농업이 계기가 되어 그 후 홋카이도 개척사(北海道開拓使)의 촉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두 번째 인물, 당시의 홋카이도 개척사의 차관이자, 추후에 장관이 된 구로다 키요타카가 등장합니다. 그는 유능한 인재를 키우려면 교양 있는 어머니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 교육을 진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막부 말기에 맺어진 불평등 조약의 개정 등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 이와쿠라 사절단(岩倉使節団)이 미국과 유럽을 순방하는 것이 결정되어 그 일행에 여자 유학생을 동행 시키게 되었습니다.
쿠로다 밑에서 일하고 있던 센는 처음에 우메코의 언니인 코토코에게 유학을 권유했지만, 코토코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6세의 우메코가 유학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갔던 우메코는 워싱턴 근처의 호스트 패밀리에 맡겨져 약 11년동안 체재했습니다. 17세에 일본에 귀국했다가 24세에 다시 유학을 떠나, 귀국 후 35세에 여자 영어 학원(현재 쓰다주쿠대학)을 설립했습니다.
지폐의 초상화는 우메코가 30대 무렵일 때의 사진 여러 장을 참고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