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2

설날 이야기 / お正月のこと

올해 신정에 처음으로 손녀가 우리 집에 왔습니다. 모유와 함께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갓난아기를 보면서 제가 어렸을 때의 연말 연시 행사가 생각났습니다. 


12월이 되면 모치바나(사진을 참조)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잎이 떨어진 가지를 준비해 가져다 주시면 거기에 동그란 모양의 떡을, 밥을 으깨어서 만든 접착제로 붙여가며 만듭니다. 완성되면 천장에 매달아 장식했습니다. 오래된 우리 집이 매우 화려하게 변했습니다. 

최근에는 떡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 무렵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절구에 직접 떡을 찧어서 만들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목욕탕을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건물 안에 보일러를 데우기 위한 흙이 깔린 장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절구를 놓고 떡을 찧었습니다. 떡을 찧는 것은 할아버지가, 떡에 물을 주기 위해 손을 넣는 것은 할머니였습니다. 저는 두 사람의 절묘한 타이밍을 감탄하면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만들어진 떡은 바로 전분가루를 뿌린 판 위에 놓고 식힙니다. 떡을 자를 수 있는 온도가 되면 작은 직사각형으로 잘라서 낮에도 0도 이상이 되지 않는 서늘한 장소에 저장합니다. 

설날의 놀이 중에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네츠키(작은 나무판으로 깃털로 만든 공을 치고 노는 배드민턴 같은 놀이) 입니다. 배드민턴보다 몇배나 더 작은 면으로 공을 치는 것이 매우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번은 친구와 함께 ‘설날 인사’를 하러 나간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설날에는 “오넨시”라는 인사를 하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물어보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하면 근처 집을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친구와 둘이서 할아버니 할머니 집의 이웃집을 돌아다니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러자 가는 곳마다 세뱃돈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기뻤습니다.

1월 1일에는 오조니(일본식 떡국)를 먹습니다. 후지야마 가문 (나의 친가)의 오조니는 다시마 국물에 간장, 술, 그리고 포인트로 약간의 설탕을 넣은 심플한 레시피였습니다. 타카다 가문(나의 시댁)의 오조니에는 닭고기가 들어있었습니다. 현재는 우리 집의 오조니에도 닭고기가 들어 있습니다. 

今年初めて孫が家に来ました。離乳食の始まった孫を見ながら、自分の子供の頃の年末年始の行事を思い出しました。

12月になると餅花を飾りました。葉の落ちた枝を父が取ってきてくれて、それに半円形の餅花をご飯をつぶして作った糊で枝に貼り付けながら飾っていきます。出来上がると天井から下げます。部屋がとても華やかになります。

お餅は最近は買うことが多いですが、そのころは祖父母がうすときねでついていました。祖父母は銭湯をやっていたので、ボイラーを焚くための土間がありました。そこにうすを置いて餅つきをしていました。餅をつくのは祖父、合いの手を入れるのは祖母です。その絶妙のタイミングをほれぼれしながら眺めていました。つきあがった餅は、もちとり粉の上に置き、冷まします。切ることができる温度になったら、それを小さな長方形に切り分けて、廊下など0度以上にならない場所に保存します。

お正月の遊びで覚えているのは、羽根つきです。バドミントンの何分の一という小さい面で羽根を打ち返すのがとても難しかった記憶があります。

一度、‘お年始の挨拶‘を友だちとしたことがありました。祖父が「お正月にはお年始という挨拶をするものだ。」と言うので「どうやるの?」と聞いてみたら「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と挨拶をして回ると言ったのです。それで小学校1年生の私は友だちと二人で祖父母の家の近所を回り「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と挨拶しました。すると、行く先々でお年玉をくれたのです。今思い返すと恥ずかしいですが、当時はとても嬉しかったのを覚えています。

1月1日にはお雑煮を食べます。藤山家(私の実家)のお雑煮は昆布だしに醤油、酒、そして隠し味にほんの少し砂糖を入れたシンプルなものでした。高田家のお雑煮には鶏肉が入っていました。現在は我が家のお雑煮も鶏肉が入っています。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