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개척촌은, 메이지 시대와 쇼와 시대 초기에 건축된 홋카이도 여러 곳의 건축물을, 54.2 헥타르의 부지에 이축 복원하고 재현한 야외 박물관입니다. 3월 초순에 그곳으로 프랑스에서 온 친구와 그 가족을 안내했습니다.
개척촌은 지금까지 여러 번 갔었지만 겨울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친구의 아들과 딸은 일본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영어로 자원봉사 가이드를 부탁했습니다. 삿포로보다 고도가 높은 그 장소는, 당일 아침부터 눈이 올 것 같은 기미였습니다. 저희가 신고 있던 신발로는 걷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장화를 빌렸습니다. 게다가 개척촌에는 펠트 모자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남편을 제외한 친구 가족 3명과 저는, 모두 볼리비아인 같은 옷차림으로 흰색 일색의 세계를 걸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마스크를 하고 있던 저는 자주 안경이 흐려져서, 여러 번이나 벗어서 닦지 않으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이드 코스는 약 1시간이 걸렸습니다. 현재도 아사히카와(旭川)에서 가게를 계속 운영하고 있는 쪽 염색의 가게에서 견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엌에서는 신부(인형)가 부엌칼을 손에 들고 무언가를 썰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여관이나 사케 양조장, 말 썰매를 제조하는 집 등, 내리는 눈을 헤치고 1개, 또 1개씩 문을 열고 닫으면서 견학했습니다.
3월 3일은 이미 지났지만, 여기 저기에 다이쇼(大正)시대나 쇼와(昭和) 초기의 히나 인형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깊은 눈으로 덮인 '마을'을 걸으면서 이 순간 19세기에 홋카이도로 이주해 온 선인들의 노고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오타루에서 이전한 청어잡이 배 선주 아미모토, 아오야마가의 어두막(어부가 머물었던 건물)이었습니다. 건물 안은 이로리(いろり=일본 전통 화로)에 숯이 붉게 불타면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견학을 마치고, 개척 마을의 식당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제 친구 세실리아상은 양슈(홋카이도에서 당시 청어 낚시를 했던 어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정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北海道開拓の村は、明治から昭和初期にかけて建築された北海道各地の建造物を、54.2㌶の敷地に移築復元・再現した野外博物館です。3月始め、そこへフランスの友人とその家族を案内しました。
開拓の村は、これまで何度も行ったことがありましたが、冬は初めてでした。友人の息子さんと娘さんは日本語が話せないので、英語のボランティアガイドをお願いしました。札幌の市街地より標高の高いその場所は、当日朝から雪模様でした。私たちの履いている靴では歩けないだろうと、長靴を貸してくれました。さらにフェルトの帽子まで用意されていて、主人を除く友人家族三人と私は、全員ボリビア人のような装いで白一色の世界を歩きました。
メガネをかけてマスクをしていた私は、すぐにメガネが曇ってしまい、何度も外して拭かなくては前が見えないような状況でした。ガイドコースは約一時間。現在も旭川でお店を続けている藍染のお店から見学が始まります。台所ではお嫁さんが包丁を手に持ち何かを切っています。当時の旅館や日本酒の醸造所、馬橇を製造する所など、降りしきる雪をかき分けて一件、また一件と戸を開け閉めしながら見ていきました。
3月3日は過ぎていましたが、そこここに大正時代や昭和初期のひな人形が飾ってありました。深い雪に覆われた「町」を歩きながら一瞬、19世紀に北海道へ移住してきた先人の労苦が垣間見えるような気がしたものです。最後に訪れたのは小樽から移設したニシン漁の網元、青山家の番屋(漁師が寝泊まりしていた建物)でした。建物の中は囲炉裏に炭が赤々と燃え、身体を暖めてくれました。
見学を終えて、開拓の村の食堂で私たちは昼食をとりました。友人のセシリアさんは、ヤン衆(北海道で当時、ニシン漁をしていた漁師をそう呼んだ)定食を美味しそうに食べていました。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