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4

삿포로 TV 탑, 등록유형문화재에 등록 / さっぽろテレビ塔、登録有形文化財に登録

3월 13일, 삿포로 TV 탑이 드디어 정식적으로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에 등록되었습니다. 등록유형문화재는 건축된 지 50년 이상이 지난 귀중한 건축물을 등록하는 제도입니다.

삿포로 TV 탑을 설계한 사람은 나이토 다추(内藤多仲)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1950~60년대, 큰 도시에 지어진 많은 타워를 설계했는데, 그 타워들을 ’타워 6 형제‘라고 부릅니다.

제 출신지인 나고야에 있는 나고야 TV 타워가 1954년에 지어져서, ’장남‘입니다. 그 후, 오사카 츠텐카쿠, 벳부 타워, 삿포로 TV 탑, 도쿄 타워, 하카타 포트 타워의 순서로 지어졌습니다.

놀랍게도 삿포로 TV 탑은 무려 도쿄 타워가 지어지기 1년 전인 1957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쿄 타워가 먼저 2013년에 등록유형문화재에 등록되었습니다. 

’타워 6 형제‘ 중에 등록유형문화재에 등록되지 않았던 타워는 삿포로 TV 탑하고 하카타 포트 타워뿐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 등록은 오랜 염원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등록을 기념하여 다양한 기획이 진행되거나 특별한 상품이 팔리고 있습니다.

2005년의 공사로 높이가 약 3미터 줄어들어 144미터가 됐다는 것이 작년 11월에 밝혀져서, 세상의 화제가 된 삿포로 TV 탑. 

낮과 밤 둘 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낮 밤 티켓‘(1500엔), 삿포로 시계탑에도 입장할 수 있는 ‘공통 입장권’(1200엔)도  있으니까, 삿포로에 오시면 꼭 방문해 보세요.

삿포로 TV 탑

나고야 TV 타워


3月13日、さっぽろテレビ塔がついに正式に国の登録有形文化財に登録されました。登録有形文化財とは、建築から50年以上が経過した貴重な建造物を登録するものです。

さっぽろテレビ塔を設計したのは内藤多仲(たちゅう)という人です。彼は1950〜60年代に大都市に建てられたタワーの多くを設計し、「タワー六兄弟」と呼ばれるそうです。

私の出身地である名古屋にある名古屋テレビ塔が1954年に建てられ、「長男」です。その後、大阪通天閣、別府タワー、さっぽろテレビ塔、東京タワー、博多ポートタワーの順で建てられました。

なんとさっぽろテレビ塔は、東京タワーが建つ1年前の1957年に完成していたのです。にもかかわらず、東京タワーの方が先に、2013年に登録有形文化財に登録されていました。

「タワー六兄弟」の中で登録有形文化財に登録されていなかったのは、さっぽろテレビ塔と博多ポートタワーだけでした。

ですから、念願の登録と言えます。現在、登録を記念して、様々な企画が行われたり、特別なグッズが売られたりしているようです。

昨年11月には、高さが2005年の工事で約3メートル縮んで144メートルになっていたことが明らかになり、世間の話題となったさっぽろテレビ塔。

昼と夜の2回、景色を楽しめる「昼・夜チケット」(1500円)や札幌市時計台にも入れる「共通入場券」(1200円)もありますので、札幌に来た際にはぜひ行ってみてください。

(가)

“시마에나가” (오목눈이) 일러스트 삿포로시 지정 쓰레기 봉투 / シマエナガのイラスト付き札幌市指定ゴミ袋

삿포로시가 2월부터 시작한 유료 지정 쓰레기 봉투를 낱개로 판매하는 시도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이백을 안 가지고 왔을 때 삿포로시의 지정 쓰레기 봉투를 사고 대신 사용하도록 하는 시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쓰레기 봉투에 그려진 "시마에나가" (오목눈이)일러스트가 인기를 얻어서 매진된 가게가 많다고 합니다.


가게 계산대에서 마이백을 안 가지고 와서 , 갑자기 사야 되는 상황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삿포로시가 쓰레기 봉투 낱개로 판매하는 이유는 쓰레기 봉투를 줄이고, 더 나아가 플라스틱 제품을 전체적으로 삭감하려는 의식을 갖자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현재 쓰레기 봉투세트 10 장에 팔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쓰레기 양이 적은 가족, 또 1인 가구 같은 경우에는 한 장씩 살 수 있으면 아주 편리합니다. 

마이백을 안 가지고 왔을 때 "시마에나가"(오목눈이)가 그려진 쓰레기 봉투를 한 장 사면 됩니다.

마이백으로 사용한 후 집에 돌아가서 쓰레기 봉투로써 재활용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좋은 시도입니다.


여행객 분들한테도 가게에서 어쩔수 없이 유료 비닐 봉투를 사는 것 보다 기념이 될 것 같습니다.


삿포로 시내의 대형 슈퍼마켓을 비롯한 180개 점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10리터짜리 , 20리터짜리를 합해서 17만 장의 지정 쓰레기 봉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크스/이온 등) 

"시마에나가"(오목눈이)가 그려진 지정 쓰레기 봉투의 낱개 판매는, 재고가 없어지는 대로 판매를 종료합니다.

특히 "시마에나가"(오목눈이)는 인기가 많아서, 2월부터 낱개로 판매가 시작되었지만 벌써 매진인 가게가 있다고 합니다.


아쉽지만 구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테니까, 이 정책이 정식으로 시행되기를 기대합니다.




札幌市が2月から始めた有料指定ゴミ袋をバラ売りする、試みが話題になっているようです。

マイバッグを持って来なかった時に札幌市の指定ゴミ袋を買って代わりに使ってもらうという試みです。

それだけでなく、そのバラ売り指定ゴミ袋に描かれた“シマエナガ”のイラストが人気を集め、売り切れた店もが多くなったそうです。

お店のレジでマイバックを持って来なくて、急に買わなければならない時はとても残念な気持ちになります。  
札幌市がバラ売りをする理由は、ゴミ袋を減らして、さらにプラスチック製品を全体的に削減する意識を持っていこうという意図のようです。

現在、1セット10枚で販売されています。
実際、ゴミの量が少ない家族や一人世帯などが一枚ずつ買うことができるのは、とても便利です。 
マイバッグを持ってこなかった時、“シマエナガ”が描かれたゴミ袋を1枚買えばいいのです。
マイバッグとして使った後、家に帰ったらゴミ袋として再利用できるのは本当に良い試みです。

旅行者の方もスーパーマーケットなどで買い物をして
仕方なく有料のレジ袋を買うよりは記念になりそうです。

札幌市内大型スーパーマーケットをはじめとして180店舗が参加していて、10リットルと20リットル合わせて17万枚の指定ごみ袋を販売しています。(アークス/イオンなど)
“シマエナガ”が描かれた指定ごみ袋のバラ売りは、在庫がなくなり次第終了です。
特に“シマエナガ”の人気が高いので、2月からの試みですが、すでに売り切れのお店も多いそうです。

残念ですが、手に入らない場合があるでしょうから、この試行が正式に始まることを期待します。
(우)

하얀 세계 / 別世界

홋카이도 개척촌은, 메이지 시대와 쇼와 시대 초기에 건축된 홋카이도 여러 곳의 건축물을, 54.2 헥타르의 부지에 이축 복원하고 재현한 야외 박물관입니다. 3월 초순에 그곳으로 프랑스에서 온 친구와 그 가족을 안내했습니다. 

개척촌은 지금까지 여러 번 갔었지만 겨울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친구의 아들과 딸은 일본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영어로 자원봉사 가이드를 부탁했습니다. 삿포로보다 고도가 높은 그 장소는, 당일 아침부터 눈이 올 것 같은 기미였습니다. 저희가 신고 있던 신발로는 걷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장화를 빌렸습니다. 게다가 개척촌에는 펠트 모자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남편을 제외한 친구 가족 3명과 저는, 모두 볼리비아인 같은 옷차림으로 흰색 일색의 세계를 걸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마스크를 하고 있던 저는 자주 안경이 흐려져서, 여러 번이나 벗어서 닦지 않으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이드 코스는 약 1시간이 걸렸습니다. 현재도 아사히카와(旭川)에서 가게를 계속 운영하고 있는 쪽 염색의 가게에서 견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엌에서는 신부(인형)가 부엌칼을 손에 들고 무언가를 썰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여관이나 사케 양조장, 말 썰매를 제조하는 집 등, 내리는 눈을 헤치고 1개, 또 1개씩 문을 열고 닫으면서 견학했습니다. 

3월 3일은 이미 지났지만, 여기 저기에 다이쇼(大正)시대나 쇼와(昭和) 초기의 히나 인형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깊은 눈으로 덮인 '마을'을 걸으면서 이 순간 19세기에 홋카이도로 이주해 온 선인들의 노고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오타루에서 이전한 청어잡이 배 선주 아미모토, 아오야마가의 어두막(어부가 머물었던 건물)이었습니다. 건물 안은 이로리(いろり=일본 전통 화로)에 숯이 붉게 불타면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견학을 마치고, 개척 마을의 식당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제 친구 세실리아상은 양슈(홋카이도에서 당시 청어 낚시를 했던 어부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정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北海道開拓の村は、明治から昭和初期にかけて建築された北海道各地の建造物を、54.2㌶の敷地に移築復元・再現した野外博物館です。3月始め、そこへフランスの友人とその家族を案内しました。

開拓の村は、これまで何度も行ったことがありましたが、冬は初めてでした。友人の息子さんと娘さんは日本語が話せないので、英語のボランティアガイドをお願いしました。札幌の市街地より標高の高いその場所は、当日朝から雪模様でした。私たちの履いている靴では歩けないだろうと、長靴を貸してくれました。さらにフェルトの帽子まで用意されていて、主人を除く友人家族三人と私は、全員ボリビア人のような装いで白一色の世界を歩きました。

メガネをかけてマスクをしていた私は、すぐにメガネが曇ってしまい、何度も外して拭かなくては前が見えないような状況でした。ガイドコースは約一時間。現在も旭川でお店を続けている藍染のお店から見学が始まります。台所ではお嫁さんが包丁を手に持ち何かを切っています。当時の旅館や日本酒の醸造所、馬橇を製造する所など、降りしきる雪をかき分けて一件、また一件と戸を開け閉めしながら見ていきました。

3月3日は過ぎていましたが、そこここに大正時代や昭和初期のひな人形が飾ってありました。深い雪に覆われた「町」を歩きながら一瞬、19世紀に北海道へ移住してきた先人の労苦が垣間見えるような気がしたものです。最後に訪れたのは小樽から移設したニシン漁の網元、青山家の番屋(漁師が寝泊まりしていた建物)でした。建物の中は囲炉裏に炭が赤々と燃え、身体を暖めてくれました。

見学を終えて、開拓の村の食堂で私たちは昼食をとりました。友人のセシリアさんは、ヤン衆(北海道で当時、ニシン漁をしていた漁師をそう呼んだ)定食を美味しそうに食べていました。

(다)